독일+525) 굿바이 Herr Forester
2019.10.06.So 갑작스러운 이별
요즘 며칠 동안이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을 때 까지만 해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고작 1시간 사이에 잠시 집에 들리려고 집으로 가는 길, 비는 퍼붓고 있었다. 독일은 늘 비가 추적추적 내리지만 이렇게 퍼붓는 일은 잘 없는데 한층 더 우울해 보이는 독일.
그런데 집 앞에 웬 소방차와 구급차가 있었다. 우리 집과 옆 집 앞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던 차들...그래서 설마 우리 집일까 했다. 그런데 대문을 지나 현관문을 열쇠를 열려는데, 문이 이미 열려 있고 1층 집에 구급 대원들이 있었다. 1층은 집주인 할아버지 부부가 살고 계셨다. 여길 지나가도 되나 망설이는 순간, 열린 문 사이로 할머니께서 손짓을 하시며 위로 올라가도 된다고 하셨다. 구급차가 온 건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음이 분명하지만, 침착해 보이는 할머니를 보는 순간 '별 일은 아니겠지' 하고 무심히 집에 들렸다가 다시 외출을 했다.
열린 현관 문 사이로 구급 대원이 응급 조치를 하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쓰러지셨나? 무슨 일이지?' 하고 무심코 생각했다. 그때...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사실 구급차가 집까지 방문 했다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가벼운 일로 넘기며 '잠깐의 헤프닝이겠지' 하고 그냥 무심코 지나쳤다.
한참 밖에서 시간을 보낸 후 친구와 같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 대문을 막고 낯선 차가 서 있었다. 구급차가 이제 없길래 상황이 다행히 종료가 되었나 보다 했다. 또 현관문이 열려있었다. 할아버지의 따님인 우리의 집주인 Tanya가 거기 서있었다.
그리고 현관 문 안에 바로 보이던 것은... ... 할아버지의 운구함이 있었다. 뚜껑이 없이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다. 순간 너무나 놀랐는데 탄야는 지나가도 된다고 했다. 너무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린채....그 옆을 지나쳐 들어 가는데...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고 나는 친구를 뒤로 한채 룸메들에게 연락을 했다..단체 텔레 챗방에서 아랫 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까지는 말하지 못했지만, 내가 심각한 뉘앙스로 아이들을 부르자 다들 짐작했다는 반응이였다. 다들 집 앞에 구급차가 온 것을 봤었다고 한다. 한 룸메는 외출 후 집에 들어 가려는데 Leichenwagen이 집 앞에 서있어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내가 집에 들어 갈 때 봤던 낯선 차가 운구차였나 보다..
나는 독일에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남은 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인사를 건내는게 예의인지 몰라서 룸메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런데 내 방 창문 밖으로 할아버지의 운구함이 차에 실려 떠나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인건가 싶은 마음에 일층으로 달려 갔다. 할머니와 딸이 서있었고, 아까까지만 해도 할아버지의 시신 옆에 천진 난만 했던 손녀가 이제서야 이별을 실감한 듯 울고 있었다. 나도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그들을 보자마자 펑펑 울었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위로하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아침부터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할머니도 나를 안아주시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그렇게 짧은 인사를 하고 어떻게 할지 몰라 멀뚱히 서있다가 다시 내 방으로 올라왔다.
내가 이렇게 슬픈 이유는 또 망할 '후회'때문이다. 할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언어때문에 망설이다가 묻고 싶은 것도 제대로 묻지 못했다. 은퇴하신 듯 매일 집에 계시는 할아버지는 항상 조용 조용 뭔가를 하셨지만, 알게모르게 따분해 보였다. 할아버지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며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매일 망설이며 다음으로 미뤄 왔었다. 독일은 늙으신 분들은 정원을 가꾸거나 거의 집에서 온 종일을 보내는게 전부라던데, 그와 수다를 떨면서 독일어를 배워 볼까 생각도 했었다. 혹시 겉으론 친절하지만 동양인을 싫어하진 않으실지.. 나와 편하게 말이 통하지 않아 불편하진 않으실지, 걱정만 앞세우다가 결국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끝이 났다.
항상 술병이 가득 쌓였었고, 골초의 담배 냄새가 우리 집까지 진동했지만, 늘 친절했던 그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다. 아니, 나 자신조차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지 모른다.
매일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내가 무언갈 물어보려고 하면 항상 Alles Okay?라고 물어보셨었는데...그리고 내가 무언가 얘기를 하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지만 늘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셨다. 우리 집에 문제가 있다는 줄 알고 외출을 하다가도 '그래, 집에 가보자' 라며 우리 집을 확인하러 오셨었다. 나는 그 상황이 또 언어 소통의 문제가 있었구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할아버지는 무언가 해결해 주시려고 할 때 기운이 돋아 보이셨다. 마침내 드디어 할 일이 생겼구나 하는 기다렸다는 듯한?
2019년 1월 1일, 이사한 첫 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사실 독일어를 못한다고... 그런데 괜찮냐고... 그는 '문제 없다 Kein Problem'이라며 아주 쿨하게 대답하셨었다. 그때 그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이 집을 구하기 직전까지 한창 집을 구하면서 언어 문제로 인한 속앓이를 참 많이 했다. 혹시 내가 독일어를 못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곤란해 할 까봐 심각하게 걱정을 했는데, 그의 쿨한 대답이 나의 얼어 있던 마음에 안도감을 줬었다.
그리고 내가 전구를 바꾸다가 내 방 전기를 고장 냈을 때도, 나는 집 주인인 딸에게 혼날까봐 대신 할아버지를 찾아 갔었다. 그는 내 방 상태를 확인하고, 계속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괜찮다'고 하셨었다. 알아서 전기 기술자를 불러 주셨고, 며칠 후 전기 기술자가 와서 수리를 하고 간 후 이상하게도 금전적으로 요구하는게 없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어서 인권비가 비싼 나라에서 수리 비용으로 내 월급의 반 정도는 기본이겠지...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돈은 포기한 채 할아버지를 찾아 갔다. 그 당시에 금전적으로 너무 빠듯했던 때라서 무거운 마음으로 그를 찾아가 내가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는데, 그는 또 괜찮다고 한사코 사양하셨었다. 독일인을 엄청 냉정한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있었을 때 그는 나에게 친절을 베푼 첫 사람이었다. 따뜻함을 전해 준 첫 어른. 푸근함을 가졌던 분.
지하에 세탁실 옆에는 그의 화실이 있었다. 어느 날 세탁을 하러 내려 가던 길, 그는 화실에 있는 그림들을 소개해 줬었고, 현재 그리고 있는 그림도 보여줬었다. 그는 내가 별로 못 알아 듣는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얘기를 해 줬었다. 그때 하나도 못 알아들으면서 알아듣는 척을 엄청 하면서 대화를 중단하고 빠져나갈 타이밍만 보고 있었다.
내가 며칠 전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은 집에 귀가하던 길에, 집 앞에 다다랐을 때 그의 차가 차고를 빠져 나가면서 손 인사를 해주시던 모습이다. 그리고 이건 더 며칠 전이었는지... 귀갓 길에 현관 문을 열려고 키를 꽂으려는 순간, 현관 문이 갑자기 먼저 활짝 열리며 그가 인사를 했었다. 내가 너무 놀라서 까르르 웃으니 그도 까르르 웃으며 나를 맞이했었다.
지금 이렇게 내가 슬픈 건 그를 그리워 하는 마음도 있고, 나 자신에게 너무 후회가 많이 남아서 인 것 같다. 너무 후회가 남는다... 조금 더 자신 있게 다가서지 못한 나에게... 우물쭈물 하면서 인생을 다 버리고 있는 나에게...
난 항상 이별이 너무나 힘들다. 아직은 누군가와 이별 할 준비가 부족하다.
정말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너무 감사했습니다. 할아버지.
굿바이 Herr Fore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