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537) 정말 굿바이
2019.10.18. 금요일 그의 Beerdigung.
독일에 와서 장례식에 가는 일 따위는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장례식은 한국처럼 돌아가신 직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2주나 뒤에 치러졌다. 아래 집 할아버지와 생각지도 못한 이별을 한 후, 할아버지의 딸인 Tanja에게 장례식 날짜를 알리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당연히 가야지 생각을 했다. 평일 금요일 정오에 치러지는 장례식. 나는 월차를 쓰고 참석했다.
회색 빛 하늘에 비구름이 자욱한 평범한 독일의 가을 날, 나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가고 있다. 다른 룸메이트는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했다. 장소는 집과 그다지 멀지 않은 동네 한 켠에 있는 공원 묘지였다. 우리 나라 공동 묘지는 엄청 구석에 있거나 숨어 있는 것 같은데, 평범한 마을 바로 앞에 공동 묘지가 군데 군데 있는 독일이 신기했다. 독일의 장례식에는 어떤 걸 준비해야 할까? 꽃다발은 준비하지 말라는 부탁으로 맨손으로 가야 했다.
막상 공원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는데, 공동 묘지 한 쪽에 있는 작은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은 예배당이었다. 거기에서 고인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그 다음 공원에 안장을 하게 되는 거였다. 할아버지의 지인들이 모인 만큼 거의 모두 연세가 있으셨는데, 동양인은 나 뿐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동양인이라서 뻘쭘한 순간이었다. 입구에는 방명록을 적게 되어 있고, 방명록 아래에는 편지함이 있었다. '아! 독일의 장례식에는 편지를 준비해 가야 하는구나.' 수북히 쌓인 편지 봉투들을 보며, 저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했다. 한국의 조의금 문화에 익숙한 나는 무수히 쌓인 편지를 보고 순수함을 느꼈다. 물론 우리의 문화도 잘 못 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위로의 방식이 다를 뿐.
기독교 식 장례였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시간이 있었고, 갑자기 한 쪽 스피커에서 들썩이는 신나는 노래가 한 곡 흘러나왔다. 과연 이게 장례식장에 어울리는 노래인가? 너무 쌩뚱맞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라고 한다. 내게도 익숙한 노래였다.
Waterloo -ABBA
My my, at Waterloo Napoleon did surrender
Oh yeah, and I have met my destiny in quite a similar way
The history book on the shelf
Is always repeating itself
Waterloo, I was defeated, you won the war
Waterloo, promise to love you for ever more
Waterloo, couldn't escape if I wanted to
Waterloo, knowing my fate is to be with you
Waterloo, finally facing my Waterloo
My my, I tried to hold you back but you were stronger
Oh yeah, and now it seems my only chance is giving up the fight
And how could I ever refuse
I feel like I win when I lose
Waterloo, I was defeated, you won the war
Waterloo, promise to love you for ever more
Waterloo, couldn't escape if I wanted to
Waterloo, knowing my fate is to be with you
Waterloo, finally facing my Waterloo
So how could I ever refuse
I feel like I win when I lose
Waterloo, couldn't escape if I wanted to
Waterloo, knowing my fate is to be with you
Waterloo, finally facing my Waterloo
Waterloo, knowing my fate is to be with you
Waterloo, finally facing my Waterloo
할아버지가 이 노래를 들으셨던 세대구나. 이 노래를 들으면 앞으로도 이 날이 떠오를 것 같다. 노래의 제목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다행히 룸메이트가 나중에 제목을 알려줬다. 내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흔해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명곡인데, 나이가 들고 나서 들으니 왜 명곡이 명곡인지 알 것 같은.
노래가 끝난 후 이제 예배당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함을 앞 장 세우고 공원으로 갔다. 거기에서 준비해온 꽃을 한 송이 씩 놓고 그 위에 흙을 뿌렸다. 나도 마련되어 있던 꽃 잎과 흙을 흩뿌렸다. 그리고 유족과 인사를 나눴다. 늘 씩씩하던 Tanja의 슬픔이 느껴졌다. 가끔 다른 룸메이트들이 보기에는 딸이 할아버지를 싫어한다고 했다. 매일 술을 드시는 할아버지가 싫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장 슬퍼하는 건 역시 딸이었다.
장례식장에 당연히 참석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많은 의구심이 들었다. 저들이 혹시 환영하지 않을지, 사실 할아버지가 나에게 겉으론 호의적이셨으나 나를 싫어했으면 어떡하나? 사람 마음 속은 모르니 말이다. 순간 고민을 했지만, 이웃의 슬픔을 위로하는 건 한국이나 독일이나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에 의심을 두면서 나 자신을 갉아 먹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나에 대한 자존감이 부족해서 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 믿고, 알 수 없는 무언가까지 신경을 쓰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 없을 수도 있지만 그저 내가 느낀 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최우선을 삼아 살고 싶다.
한 겨울, 처음 이사를 했을 때 집의 공기가 유난히 따뜻해서 마음에 들었다. 독일에서 흔하지 않은 바닥 난방이라서 집은 언제나 따스한 공기가 돌았다. 여름에는 또 유난히 선선했다. 다시 날이 추워지고 있는 지금, 외출을 하고 집에 들어 섰을 때 따뜻한 공기가 너무나 좋다. 아직도 현관 문을 열면 신발장에 할아버지의 낡은 신발들이 보인다. 언제 까지나 이 집은 할아버지의 숨결이 느껴질 것 같다.
정말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