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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푸/퇴사 1일차2021이방인/일상 2021. 9. 27. 22:00
말 그대로 퇴사 1일차.
지난 3년동안 매일 바쁘게 지나쳤던 회사 근처의 쌀국수 집과 빵집. 쌀국수 덕후인 내가 베트남 음식점인줄도 몰랐을 정도로 매일 바쁘게 지나치기만 했다. 회사 근처이기도 하고, 집 근처이기도 한데 이제서야 여기에 들를 여유가 생겼다.
오랜만에 먹는 쌀국수는 시내의 유명한 쌀국수 집만큼 맛있었다. 쌀쌀해진 날에 적격이었다. 독일 레스토랑에 오면 불편한 점이 음식을 남기면 한껏 실망을 하신다. 최선을 다해서 먹지만 늘 양이 많다.
그리고 Rewe에 붙어 있는 빵집 Eifler. 독일에서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체인점 빵집. 여기는 카페라고 부르기 애매하다. 카페처럼 앉는 자리가 있지만, 독일인들의 주식인 빵 종류를 위주로 판매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파리바게트는 베이커리며, 카페로 생각하지 않는것과 비슷하다. 가끔 마트 장을 본 후나 지나 갈 때 들리고 싶었는데 늘 경황이 없었다.
쌀국수를 먹고 빵집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카페에서 케이크랑 커피를 드시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조금 신기하다. 독일 카페에 늘 있는 커피의 한 종류인 Kaffee creme.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안 갔다. 한국식 아메리카노인데 사람들은 거기에 우유를 조금 타 마신다. 차라리 라떼를 마시지, 왜 물에다 우유를 타는걸까 싶고 색깔도 밍밍한 믹스커피 같은 색이 되고 이해할 수 없었다. 외국인들이 파인애플 피자를 보면 이런 느낌일까?
커피를 마시고 Rewe에서 장을 봤다. 요거트 코너에서 멍을 때리고, 커피우유 코너에서 멍을 때렸다. 이렇게 요거트 하나에 고민할 시간과 체력이 된다는게 새삼 신기했다. 직장을 다닐 때 내가 바랐던 여유는 특별한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마트에서 장을 볼 때 한 시간 정도는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는 여유. 항상 토요일까지 수업을 하고 저녁에 부랴부랴 장을 보러 가면 마트를 2바퀴 도는게 힘들 정도로 너무 피곤했다. 오늘 장을 보며 '이렇게 여유롭게 보다니', '느긋하게 보니 두 바퀴도 돌 수 있을 것 같다'등을 생각했다. 내가 바랐던 여유는 그냥 이런거였다.
나는 참 쉬운 성격인 것 같다. 겨우 동네 마실에 이렇게 큰 행복을 느끼다니. 아직은 그냥 평범한 월차처럼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 소소한 시간이 오랫동안 내가 바라온 '쉼표'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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