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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537) 정말 굿바이2018~2020 독일 라이프/2018~19워홀러 라이프 2019. 10. 20. 07:24
2019.10.18. 금요일 그의 Beerdigung.
독일에 와서 장례식에 가는 일 따위는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장례식은 한국처럼 돌아가신 직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2주나 뒤에 치러졌다. 아래 집 할아버지와 생각지도 못한 이별을 한 후, 할아버지의 딸인 Tanja에게 장례식 날짜를 알리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당연히 가야지 생각을 했다. 평일 금요일 정오에 치러지는 장례식. 나는 월차를 쓰고 참석했다.
회색 빛 하늘에 비구름이 자욱한 평범한 독일의 가을 날, 나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가고 있다. 다른 룸메이트는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했다. 장소는 집과 그다지 멀지 않은 동네 한 켠에 있는 공원 묘지였다. 우리 나라 공동 묘지는 엄청 구석에 있거나 숨어 있는 것 같은데, 평범한 마을 바로 앞에 공동 묘지가 군데 군데 있는 독일이 신기했다. 독일의 장례식에는 어떤 걸 준비해야 할까? 꽃다발은 준비하지 말라는 부탁으로 맨손으로 가야 했다.
막상 공원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는데, 공동 묘지 한 쪽에 있는 작은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은 예배당이었다. 거기에서 고인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그 다음 공원에 안장을 하게 되는 거였다. 할아버지의 지인들이 모인 만큼 거의 모두 연세가 있으셨는데, 동양인은 나 뿐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동양인이라서 뻘쭘한 순간이었다. 입구에는 방명록을 적게 되어 있고, 방명록 아래에는 편지함이 있었다. '아! 독일의 장례식에는 편지를 준비해 가야 하는구나.' 수북히 쌓인 편지 봉투들을 보며, 저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했다. 한국의 조의금 문화에 익숙한 나는 무수히 쌓인 편지를 보고 순수함을 느꼈다. 물론 우리의 문화도 잘 못 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위로의 방식이 다를 뿐.
기독교 식 장례였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시간이 있었고, 갑자기 한 쪽 스피커에서 들썩이는 신나는 노래가 한 곡 흘러나왔다. 과연 이게 장례식장에 어울리는 노래인가? 너무 쌩뚱맞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라고 한다. 내게도 익숙한 노래였다.
Waterloo -ABBA
My my, at Waterloo Napoleon did surrender
Oh yeah, and I have met my destiny in quite a similar way
The history book on the shelf
Is always repeating itself
Waterloo, I was defeated, you won the war
Waterloo, promise to love you for ever more
Waterloo, couldn't escape if I wanted to
Waterloo, knowing my fate is to be with you
Waterloo, finally facing my Waterloo
My my, I tried to hold you back but you were stronger
Oh yeah, and now it seems my only chance is giving up the fight
And how could I ever refuse
I feel like I win when I lose
Waterloo, I was defeated, you won the war
Waterloo, promise to love you for ever more
Waterloo, couldn't escape if I wanted to
Waterloo, knowing my fate is to be with you
Waterloo, finally facing my WaterlooSo how could I ever refuse
I feel like I win when I lose
Waterloo, couldn't escape if I wanted to
Waterloo, knowing my fate is to be with you
Waterloo, finally facing my Waterloo
Waterloo, knowing my fate is to be with you
Waterloo, finally facing my Waterloo할아버지가 이 노래를 들으셨던 세대구나. 이 노래를 들으면 앞으로도 이 날이 떠오를 것 같다. 노래의 제목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다행히 룸메이트가 나중에 제목을 알려줬다. 내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흔해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명곡인데, 나이가 들고 나서 들으니 왜 명곡이 명곡인지 알 것 같은.
노래가 끝난 후 이제 예배당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함을 앞 장 세우고 공원으로 갔다. 거기에서 준비해온 꽃을 한 송이 씩 놓고 그 위에 흙을 뿌렸다. 나도 마련되어 있던 꽃 잎과 흙을 흩뿌렸다. 그리고 유족과 인사를 나눴다. 늘 씩씩하던 Tanja의 슬픔이 느껴졌다. 가끔 다른 룸메이트들이 보기에는 딸이 할아버지를 싫어한다고 했다. 매일 술을 드시는 할아버지가 싫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장 슬퍼하는 건 역시 딸이었다.
장례식장에 당연히 참석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많은 의구심이 들었다. 저들이 혹시 환영하지 않을지, 사실 할아버지가 나에게 겉으론 호의적이셨으나 나를 싫어했으면 어떡하나? 사람 마음 속은 모르니 말이다. 순간 고민을 했지만, 이웃의 슬픔을 위로하는 건 한국이나 독일이나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에 의심을 두면서 나 자신을 갉아 먹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나에 대한 자존감이 부족해서 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 믿고, 알 수 없는 무언가까지 신경을 쓰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 없을 수도 있지만 그저 내가 느낀 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최우선을 삼아 살고 싶다.
한 겨울, 처음 이사를 했을 때 집의 공기가 유난히 따뜻해서 마음에 들었다. 독일에서 흔하지 않은 바닥 난방이라서 집은 언제나 따스한 공기가 돌았다. 여름에는 또 유난히 선선했다. 다시 날이 추워지고 있는 지금, 외출을 하고 집에 들어 섰을 때 따뜻한 공기가 너무나 좋다. 아직도 현관 문을 열면 신발장에 할아버지의 낡은 신발들이 보인다. 언제 까지나 이 집은 할아버지의 숨결이 느껴질 것 같다.
정말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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